블로터를 팝니다.

2006년 새해 벽두였습니다. 선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때 팀장으로 모셨던 선배였습니다. 그 선배와 저는 여의도 빌딩숲 지하에 웅크린 국밥집에서 따끈한 콩나물국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지상으로 나와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셨습니다.

선배가 말했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 보려고 해.”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느릿느릿 주억거렸던 것 같습니다. 선배와 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화제를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헤어졌습니다.

넉 달 쯤 더 지났겠군요. 선배와 다시 마주앉았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다니던 회사에 사의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어 달 뒤, ‘블로터닷넷’이란 이름을 웹에 처음 띄웠습니다.

벌써 9년 전이군요. 어찌 그 세월을 ‘벌써’란 말 한마디로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켜켜이 쌓인 사연들은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요. 다만, 오늘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를 꺼내든 까닭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어떡하면 더 나은 미디어를 만들 수 있을까?’ 매체라면 아침인사 나누듯 흔히 떠올리는 숙제일 겁니다. 우리라고 이런 고민을 안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테죠. 허나,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제 고민은 이와 비슷하되, 좀 달랐습니다. 정확히는 이랬을 겁니다. ‘어떡하면 즐겁고 신나게 미디어를 만들 수 있을까?’

9년을 지나오며 가장 하고팠던 일은 ‘즐겁게 일하기’였습니다. 사안을 취재하는 게 즐겁고, 기사를 쓰고 독자 반응을 받는 게 신나는 일이라면요. 좋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매체도 대개는 흥겹고 재미있었으니까요. 그 ‘즐거움’ 속에는 우리가 믿는 가치, 꿈꾸는 미디어의 바람직한 모습, 지향해야 할 태도가 모두 응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흥이 깨지고, 미디어를 만드는 게 ‘일’이 돼 버린다면 매체 수명도 지속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흥이 남아 있나 봅니다. <블로터>는 아직도 펄떡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리 돼야 할 것입니다.

<블로터>가 올해로 창간 9년째를 맞았습니다. IT 업계에서 일어난 기쁜 일, 아픈 일, 아쉬운 일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는데요. 돌아보면, 그동안 제자랑을 하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쑥맥이었으니까요. 이젠 자랑도 좀 하며 살아볼 생각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블로터>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블로터의 1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블로터>가 독자분들께 보여드리는 각오이기도 합니다.

<블로터>는 광고와 기사를 바꾸지 않습니다.

흔히 ‘엿 바꿔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죠. 업체에서 광고를 받는 대가로 적당한 기사를 올려주는 행태를 일컫습니다. 광고는 언론사의 주된 수익모델입니다. 광고를 받는 일이 불법도 아니요,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광고가 기사에 영향을 미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특정 업체의 광고를 받는 대가로 그 업체 제품 기사를 ‘그럴듯하게’ 써서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 엿 바꿔 먹는 일이 됩니다. ‘네이티브 애드’나 ‘애드버토리알’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광고 기사를 쓰는 순간, 미디어는 사라지고 엿장수만 난립하게 될 게 뻔합니다.

<블로터>도 광고를 좋아합니다. <블로터>란 플랫폼의 힘을 믿고 광고를 보내주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고를 대가로 기사에 개입하는 건 정중히 거절합니다. 당장은 돈을 챙길 순 있겠지만, 오래 갈 순 없을 겁니다. 자본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언론사에 미래는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로터>엔 그 흔한 광고 영업사원도 없습니다. 이런저런 요구와 부딪히며 광고를 수주하기보다는,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계속 우공이산하려 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지치지 않고 꾸준히 만들면 살 길은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블로터>는 웹의 개방과 공유 정신을 지지합니다.

<블로터>는 2006년 9월5일 창간했습니다. 창간 때부터 <블로터>의 모든 기사는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조건으로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내용을 임의로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비영리 용도로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블로터>는 국내에서 CCL을 적용한 첫 언론사이기도 합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유 활동도 지지합니다. <블로터>는 2010년 4월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소셜댓글’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개인 소셜 계정으로 댓글을 달게 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블로터>는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도, 저장하지도 않습니다. 뉴스레터 가입자를 대상으로 이름과 e메일 주소만 받을 뿐입니다. 꼭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개인이 웹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블로터>는 믿습니다.

<블로터>는 깨끗한 웹사이트를 지킵니다.

기사를 뒤덮는 광고, 시도 때도 없이 이빨과 뱃살이 튀어나오는 광고에 염증을 느끼시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헐벗은 ‘언니’들과 민망한 문구로 도배된 광고는 <블로터>에 없습니다. <블로터>에선 광고가 기사를 가리는 일도 없습니다. 1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는 약속입니다.

<블로터>는 또한 원본을 존중하는 웹사이트입니다. 외신이나 다른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소개할 땐 원본 페이지 웹주소를 충실히 링크로 걸어줍니다. 주요 컨퍼런스나 행사를 기사화할 땐 기사와 별도로 발표 전문을 웹문서로 정리해 공개합니다. 담당 기자가 ‘취사선택’할 때의 왜곡 위험성을 줄이고자 함입니다.

<블로터>는 ‘낚시’를 하지 않습니다.

<블로터>는 기사를 가장한 ‘낚시질’을 하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데는 소질이 없습니다. 이른바 ‘실급검 장사’도 하지 않습니다. 실급검 장사란 포털에서 지금 이 순간 뜨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맞춰 의미 없는 기사를 반복해 올리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는 기사보다는 클릭에 관심 있는, 몰염치한 행위일 따름입니다.

<블로터>는 따뜻한 시선으로 디지털을 바라봅니다.

‘IT 기업의 사회적 책임’. <블로터>가 2006년 창간할 때부터 지켜온 꼭지입니다. 9년여 세월을 거치며 꼭지명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블로터>가 추구하고 지지하는 가치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블로터>는 ‘오픈소스’로 대변되는 정보민주화 운동을 지지합니다. 웹은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또한 IT가 사회적 약자나 소외층의 삶을 개선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터>는 이런 생각이 꿈틀대는 현장에 늘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블로터>는 미디어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블로터>는 변화하는 환경을 먼저 받아들이고 변신하려 노력합니다. <블로터>는 2006년 9월, 당시 ‘웹2.0’ 흐름에 발맞춰 국내 첫 블로그 기반 미디어로 출범했습니다. 2008년에는 국내 미디어로선 드물게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뉴스 서비스를 재정비했습니다.

다양한 형식 실험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된 천편일률적인 기사에서 벗어나 인터랙티브 타임라인과 인포그래픽, 메신저 대화 형식의 기사 등 콘텐츠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는 실험을 이어 왔습니다. 2014년엔 미디어 실험 연구소인 블로터미디어랩을 설립하고,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타임라인 형태의 글을 손쉽게 쓸 수 있는 ‘블로터 타임라인 플러그인’을 만들어 오픈소스로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bloter_timeline

R

<블로터>를 팝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가치를 지키기에 국내 언론 환경은 녹록지 않습니다. <블로터>도 여러 해 동안 깨끗하고 정직한 뉴스를 만들려는 가치를 지키려 노력해 왔습니다.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 없습니다. 그러려면 저희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터>를 팔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블로터>가 지향하는 가치를 팔아볼 생각입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은 ‘가치 있는 뉴스’입니다. 그 가치란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기술이 널리 이로운 곳에 쓰이도록 돕고, 자본의 힘에 정보가 왜곡되지 않아야 하며, 인간의 따뜻한 시선으로 기술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지난 10년처럼, 다가올 10년도 이런 가치를 오롯이 녹여낸 IT 뉴스를 독자들이 만나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R

‘블로터’의 ‘+’를 찾습니다.

‘플러스’는 <블로터>의 가치를 밀어주는 후견인입니다. <블로터>의 미래 가치를 보태주시는 분 말입니다.

‘플러스’가 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1년 단위로 힘을 보태주시면 됩니다. <블로터>가 지향하는 가치에 ‘투자’해 주시는 일입니다.

<블로터>는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새로운 뉴스 실험도 더 하고 싶고요. 세상을 따뜻하고 이롭게 만드는 소식들도 더 열심히 찾아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정보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도 변함 없습니다. <블로터>가 향후 1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어깨를 두드려줄 ‘플러스’가 돼 주시지 않겠습니까?

후원자 분들께 드리는 <블로터>의 약속은 이렇습니다.

  • ‘블로터 소식지’를 보내드립니다. <블로터>가 진행 중인 기사나 취재 관련 얘기들, 준비 중인 행사 관련 내용과 사내 소소한 에피소드를 주 단위로 전해드립니다.
  • ‘블로터 오픈포럼’에 초대합니다. <블로터> 후원자 분들만을 위한 정기 모임입니다. 매달 시간 되는 분들은 자유롭게 참석해 최신 트렌드 동향을 나누고 <블로터> 기자들과 얘기도 나눠보세요. 맥주도 한 잔 곁들이면 더욱 좋고요.
  • ‘블로터 플러스의 밤’에 모십니다. <블로터>는 해마다 가을이면 창간 기념일에 맞춰 ‘블로터 파티’를 개최해 왔습니다. 올해부터는 블로터 후원자 분들을 모시고 ‘블로터 플러스의 밤’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1년 동안의 <블로터> 주요 활동과 성과를 소개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상의하는 자리입니다. ‘블로터호’가 1년 동안 어떤 항해를 했는지도 소상히 밝힐 겁니다. 캐주얼하면서도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 이 밖에 <블로터>에서 준비 중인 새로운 서비스나 행사에 <블로터> 후원자 분들을 우선 초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비스가 구체화되는대로 소식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R

쓸 만한 IT 뉴스, ‘플러스’가 지켜주세요.

<블로터>가 흔히 듣는 말들은 이렇습니다. ‘역시 블로터’, ‘믿고 보는 블로터’,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읽는 블로터’입니다. 지금까지 10여년이 그랬듯, 앞으로도 매일 빼놓지 않고 믿고 읽을 수 있는 IT 기사들을 쓰고 싶습니다. 쉽게 달궈졌다 금세 식는 깡통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오랜 세월 우직히 달아오르고 쉬이 식지 않는 뚝배기 같은 매체를 만들겠습니다.

2015년 한국 포털의 대문은 암울합니다. 대문에 걸리는 뉴스는 안하무인에 후안무치합니다. 여쭙고 싶습니다. ‘충격’과 ‘경악’이 난무하는 포털 대문에서 쓸 만한 IT 기사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블로터>의 ‘플러스’가 돼 주십시오.

– <블로터> 편집장 이희욱 드림